1.9 사회학의 반문

 #1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 환경, 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주위의 환경,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받아드리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가죠.

인지과학 실험 결과를 언급하며 말했듯이 우리 인간은 의심을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믿을 준비를 하고 태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 자라면서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걸 가르치는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받아들이기 위해선 먼저 ‘믿고’ 의심은 그 다음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걸 의심하는 아기는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무척 느릴 겁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신념의 영향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우리는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의 신념을 따르기도 합니다. 

혹은 우리가 어울리고 싶어하는 그룹의 사람들이 믿는 걸 따라 믿는 경향이 있다고도 합니다. 


한 사람이 살아오면서 그 주위 기독교인들이 훌륭한 인품으로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그 사람은 기독교에 우호적인 감정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그 사람이 불쾌한 기독교인들에 둘러쌓여 자랐다면

그 사람은 기독교에 부정적인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건 심리학이기도 하지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라는 걸 말합니다. 


#2 

무신론 대 유신론의 토론에서 종종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무신론자가 질문합니다. 

“당신은 그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기독교를 믿게 된 겁니다. 만약 불교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불교를 믿었겠죠. 마찬가지로 무신론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무신론이었을 겁니다.” 


그럼 유신론자가 대답합니다. 

“당신이 무신론자인 이유는 무신론자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까?” 


무신론자가 대답합니다.

“아니요. 전 제 입장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했습니다.” 


유신론자가 대답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입장은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제 입장은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는 판단은 합리적입니까? 편견입니까?” 



#3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고 인간의 신념은 사회적 요소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어떤 사람이 믿는 것이 전적으로 사회학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면 그건 지나친 단순화일 겁니다. 


앞에서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경험에 대한 언급을 했었는데, 사회학적 분석은 결국 사회과학의 틀에서 한 사람의 주관에 대한 해석을 제시할 수 있지만 이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 현상으로서 종교를 바라볼 때 의견과 의견이 마주하는 자리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그 현상의 발생원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의미 있는 추론과 가설이 대립하는 분야인만큼 시대에 따라 늘 새로운 해석이 생길 수 있을 겁니다. 



#4 

현대인의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미친 주요 인물 세 명을 뽑자면 심리학자 프로이트(Freud), 마르크스 (Karl Marx), 니체(Nitzsche)가 될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아이와 부모의 관계 속에서 아이가 자기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루며 합리화 하는 모습, 정당화(justification)를 발견합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뉘우치고 용서를 받으며 마음 속의 불안을 없애는 거죠. 그리고 그게 인간과 종교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해 신을 만들어 냈다는 거죠. 


한편 마르크스의 의견을 이렇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이유로 자신이 속한 계층의 권력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종교를 이용한다고 주장합니다. 제국주의를 합리화 하기 위해서 종교가 사용되었고, ‘진리를 알고 있는 집단 또는 계층’이 이 진리를 모르는 다른 집단을 배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는 겁니다. 


거기서 유명한 “종교는 인민의 아편(Opium des Volkes)”이란 말이 나옵니다. 

당시 아편은 향락을 위한 마약이 아니었습니다.

의약품으로서의 마취제가 없어 사용되던 진통제였죠.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 을 위안으로 삼으며 사회 속의 고통을 이겨냈던 거라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니체는 정의를 주장하는 모든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묻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는 이들의 동기가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혁명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얘기하는 건지. 

그래서 니체가 말합니다. 비단 종교 뿐만이 아리나 모든 도덕적 주장은 권력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5 

이런 주장을 듣고 보면 다 말이 됩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종교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주장이 맞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하지만 잠깐 멈춰서 다시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신이 있었으면 하는 인간의 바람 때문에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주장.

그 반대로 적용해도 말이 됩니다.

신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사람은 없을까요?

선과 악에 대한 고민 없이 살고 싶어서 혹은 사회적 약자를 돌봐야하는 도덕적 의무를 무시하고 싶어서 신이 없길 바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게 살고 싶어서 성경에서 요구하는 성적 도덕이 무의미한 것이길 바랄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주장은 어떨까요? 마르크스의 유토피아를 꿈꾼 국가들의 현실을 보면 답을 알 수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정권교체 이후, 자본주의 사회와 다를 바 없이 다른 계층을 핍박하고 탄압합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주장을 통해 권력을 얻고 부패됩니다. 


니체의 주장은 어떤가요? 

모든 진리에 대한 주장, 모든 정의에 대한 주장은 다 권력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며 부정합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그 주장 역시 일종의 진리로 작용을 하며, 다른 모든 주장 대신 자신의 진리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순을 낳습니다. 

내가 가진 진리 외에 다른 모든 의견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큼 절대적인 주장은 없죠. 


<Freud and Philosophy>, 1965 Paul Rico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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